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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ringfree 2026. 3. 25. 05:18

김종원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성장과 사랑에 대한 통찰

 

김종원 작가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이야기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도 인상 깊었던 세 부분을 중심으로 글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어른이라는 말 뒤에 숨는 자기합리화, 세상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 그리고 곁에 있을 때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괴테의 시와 김종원 작가의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주 놓치는 삶의 본질을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성장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두가 힘든 것”이 아니라 “내게 힘든 것”이라는 말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그거 어른도 하기 힘든 일인데”가 아니라 “그거 나도 해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던데”라고 말해야 한다고요.

 

얼핏 보면 비슷한 말 같지만, 두 문장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어른, 우리, 모두, 다들 같은 말 뒤에 숨곤 합니다. 사실은 내가 어려워하고, 내가 힘들어하고, 내가 귀찮아하는 일인데도 마치 누구에게나 다 그런 일인 것처럼 포장합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실패도 덜 부끄럽고, 부족함도 덜 드러나는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어른도 하기 힘든 일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문제는 이미 나의 손을 떠나버립니다. 누구나 힘든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정리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나도 해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라”라고 말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 안에는 시도한 경험이 있고, 실패를 인정하는 태도가 있으며, 무엇이 부족한지 돌아볼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성장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힘든 것이 아니라 내게 힘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삶의 주체가 됩니다. 귀찮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귀찮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귀찮아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자기합리화는 편하지만, 성장은 그 자리에서 멈춘다

자기합리화는 참 교묘합니다. 특히 집단의 언어를 빌릴 때 더 그렇습니다. “원래 다 그래”, “누구라도 힘들어”, “어른들도 못 해” 같은 말들은 나를 안전하게 숨겨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멈추게 하기도 합니다.

 

 

실패를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실패를 말하는 것이 체면을 내려놓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상황을 일반화하고, 나의 한계를 세상의 상식처럼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나는 해봤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는 적어도 출발선에 서 본 사람입니다. 시도했고, 부딪혔고, 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지요. 그리고 바로 그 사람만이 다음 걸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가장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말의 방향입니다. 모두에게서 나에게로, 세상에서 나 자신에게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 삶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기준은 언제나 나 자신이어야 한다

책의 또 다른 문장도 깊게 남았습니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사는 사람은 세상의 기준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고 아예 통계에서 벗어난 삶을 살죠. 언제나 기준은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모든 기준을 정하며 살지 못합니다. 자연스럽게 사회가 만든 틀 안에서 자라고, 학교와 가정과 조직이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가며 살아갑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안정된 수입, 남들이 인정하는 이력.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너무도 익숙한 삶의 경로입니다.

 

물론 그런 길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길을 내가 원해서 가는지, 아니면 그저 세상이 정해준 기준을 의심 없이 따라가고 있는지에 있습니다. 남이 만들어놓은 기준으로만 살게 되면 결국 끊임없이 비교하게 됩니다. 더 좋은 조건,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성취를 바라보며 살아가게 되지요. 그리고 그 비교는 쉽게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반대로 자기 기준을 가진 사람은 다르게 살아갑니다. 돈이나 명예를 전혀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게 됩니다. 의미, 기쁨, 성장, 행복, 헌신, 평온함 같은 것들이 삶의 기준 안에 함께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삶은 조금씩 남의 통계에서 벗어나 나만의 이야기가 됩니다.

세상이 정한 삶에서, 내가 정하는 삶으로

저 역시 돌아보면 오랜 시간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주어진 길을 따라가고, 그 안에서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 시간들도 분명 제 삶의 일부였고, 그 안에서 배운 것들도 많으니까요.

 

 

다만 지금은 생각합니다. 늦었다고 느껴지는 나이라도, 지금부터 내 기준을 하나씩 세워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요. 자기 기준으로 산다는 것은 거창한 결심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은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지 조금씩 분명히 해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만 좇을 때 가장 힘든 것은 비교입니다. 비교는 늘 나를 초라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우월감에 갇히게 만듭니다. 어느 쪽이든 건강하지 않지요. 하지만 나만의 기준이 생기면 비교보다 성찰이 많아집니다. 남보다 앞섰는가가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졌는가를 보게 되니까요.

곁에 있을 때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 이유

세 번째로 마음에 오래 남은 부분은 사랑에 대한 문장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합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대한 자주 다정한 마음을 전하세요.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후 그 사랑이 당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이 문장을 읽는데 마음 한쪽이 저릿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자주 잊고 살다가, 잃고 나서야 뒤늦게 절실히 깨닫는다는 것을요.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사랑을 다음으로 미루며 살아갑니다.

 

바빠서, 쑥스러워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오늘 하지 않은 다정한 말들이 쌓입니다. 하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고, 사람은 영원히 곁에 머물러주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 잊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요.

 

그래서 이 문장은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사랑이 나를 기억할 수 있도록, 지금 자주 다정한 마음을 전하라는 말. 결국 사랑은 마음속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표현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은 나중이 아니라 지금이어야 한다

괴테는 평생 시간의 유한함에 대해 자주 말했습니다. 오늘이라는 날은 다시 오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요.

 

그 말을 떠올리면 사랑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은 언젠가 충분히 시간이 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에게 건네는 짧은 안부, 가까운 사람에게 보내는 다정한 말, 고마웠다고 전하는 한마디. 어쩌면 사랑은 거창한 사건보다 이런 작은 표현들 안에 더 많이 들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너무 자주 뒤늦은 후회가 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내일도 당연히 내 곁에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표현해야 합니다.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아직 늦지 않았을 때, 아직 들을 수 있을 때, 아직 함께할 수 있을 때 말입니다.

성장과 사랑은 결국 같은 방향을 본다

이번 글에서 만난 세 가지 문장은 결국 하나로 이어집니다. 나를 집단 뒤에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살아보는 것,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미루지 않고 표현하는 것.

 

이 모든 것은 결국 더 진실하게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성장은 대단한 성취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아니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사랑 역시 특별한 날의 큰 이벤트보다 오늘 건네는 다정한 한마디에서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괴테의 시와 김종원 작가의 해석은 늘 삶을 멀리 데려가기보다, 다시 내 일상으로 돌려보내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오늘의 태도를 바꾸게 하니까요.

마무리하며

이번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네 번째 연재를 읽으며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사람은 세상의 기준에만 맞춰 살수록 자기 자신을 잃기 쉽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수록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사랑은 언젠가 시간이 나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표현해야 한다는 것도요.

 

“어른도 힘들다”라고 말하며 숨기보다 “나도 해봤는데 쉽지 않더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남과 비교하며 흔들리기보다 내 기준을 조금씩 세워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다정한 마음을 미루지 않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오늘도 괴테의 문장과 김종원 작가의 해석을 통해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성장도, 사랑도 결국은 지금 이 순간의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