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희 『공감에 관하여』|건강한 공감에 대해 배우다
이금희 『공감에 관하여』|건강한 공감에 대해 배우다
오늘은 작년 11월에 출간된 따끈한 에세이 한 권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방송인으로 더 익숙한 이금희 작가의 『공감에 관하여』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많은 사연과 고민을 마주해 온 사람이 쓴 책이라 그런지 제목부터 눈길이 갔습니다.
실제로 이 책은 단순히 “공감이 중요하다”는 뻔한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공감해야 하는지, 관계 속에서 사람을 덜 소모시키는 태도는 무엇인지를 차분하게 들려주는 책이었습니다.
이금희 작가를 떠올리면 많은 분들이 “6시 내 고향”, “아침마당” 같은 프로그램을 먼저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늘 단정하고 따뜻한 진행을 보여주던 분이 책을 냈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궁금해졌고, 평도 좋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펼쳐보니 오랫동안 수많은 티타임과 상담, 대화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이 촘촘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더 쉽게 공감이 갔던 것 같습니다.
경청은 듣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마음
책에서 가장 먼저 오래 붙들게 된 문장은 스티븐 코비의 말을 인용한 부분이었습니다.
경청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마음이라는 말입니다. 이 문장은 너무 당연해 보여도 실제로는 참 어렵습니다.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머릿속으로 다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준비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끝까지 듣기도 전에 판단하고, 조언하고, 정리해 버리기도 하지요.
돌아보면 저 역시 그렇습니다.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보면 “그건 네가 잘못했네”, “그래도 더 힘든 사람도 많아”, “그 정도는 별일 아니야” 같은 식의 반응을 너무 쉽게 떠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듣는 척은 했지만,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머문 것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결국 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조급함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말해줘야 할 것 같고,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내 경험을 덧붙이고 싶어지는 마음 말입니다. 하지만 진짜 공감은 조언보다 먼저 이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은 계속 상기시켜 줍니다.
공감은 조언보다 먼저 와야 한다
살다 보면 조언은 넘쳐납니다. 누구나 쉽게 해결책을 말할 수 있고,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라고 말하기도 쉽습니다. 그런데 정작 힘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해답이 아니라, 내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일 때가 많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공감은 상대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능력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이 머물 자리를 내어주는 태도라는 점이었습니다. 말은 적어도 되고, 침묵만으로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기”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공감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자기 판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더 공감하는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가 먼저 맛있는 것을 먹는 집의 철학
책에는 꽤 인상적인 부모님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부모가 먼저 먹으며 “너는 앞으로 살날이 많으니까 맛있는 것 먹을 날도 많다. 맛있는 건 우리부터 먹는 거야”라고 말했다는 대목입니다.
처음 읽으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보통은 좋은 것을 자녀에게 먼저 주는 것이 부모 사랑의 전형처럼 여겨지니까요. 그런데 이 사연을 따라 읽다 보면, 꼭 한 가지 방식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자녀를 먼저 챙깁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이 더 익숙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헌신이 너무 당연해져 버릴 때입니다. 아이가 부모의 희생을 사랑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나중에는 감사보다 당연함만 남을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아버지는 생선 살보다 가시에 붙은 고기를 좋아하셔” 같은 이야기가 너무 익숙했지요. 그런데 사실 그것은 좋아서가 아니라 가족을 먼저 먹이기 위한 희생이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책 속 부모님의 태도는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부모 자신의 삶도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그것 역시 건강한 관계의 한 형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쉬는 법 1위가 독서라는 사실
책에서 반가웠던 또 하나의 내용은 클라우디아 해먼드의 『잘 쉬는 기술』을 소개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잘 쉬는 방법 1위가 독서였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자연에 가기, 혼자 있기, 음악 감상, 산책, 목욕, 잡념, TV 시청, 명상 등이 순위에 오릅니다. 공통점은 흥미롭습니다.
돈이 거의 들지 않고, 혼자서 할 수 있고, 매일 할 수 있으며,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이 결과가 무척 반가웠습니다. 독서는 분명 조용한 활동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만히 앉아 책장을 넘기는 일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깊은 방식의 휴식이 될 수 있습니다. 자극은 적지만 몰입은 깊고, 혼자 있으면서도 타인의 삶과 생각을 안전하게 만날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휴식마저도 상품처럼 소비되는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싼 여행, 고급 스파, 특별한 레저를 해야만 제대로 쉬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를 보여줍니다. 가장 좋은 휴식은 대개 조용하고 단순하며, 돈보다 태도가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혼자만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많이 공감했던 부분은, 잘 쉬는 방법들 대부분이 혼자서 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했든, 가족이 있든, 사람들과 잘 지내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시간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함께하는 시간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완전히 사라진 삶은 사람을 점점 메마르게 만들기도 합니다.
회사에서도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집에 가도 온전히 혼자일 수 없는 어떤 선배는 퇴근 후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서 차에 타고, 시동도 걸지 않은 채 유튜브를 틀어 놓고 잠깐의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보고 있자니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 시간이 그분에게 꼭 필요했겠구나 싶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지나치게 죄책감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잘 쉬기 위해, 다시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공감 역시 나를 소모시키지 않을 만큼의 거리와 회복이 있어야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으니까요.
티 내지 않는 배려가 더 깊게 남는다
책에는 신입사원이 긴장할까 봐 부장님이 일부러 운전을 맡았던 일화도 나옵니다. 겉으로는 “나는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멀미를 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막내가 장거리 운전을 하며 부담을 느낄까 봐 배려한 것이었다고 하지요.
이런 장면은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공감은 거창한 말이나 감동적인 연설보다, 이렇게 상대가 눈치채지 않게 덜 힘들도록 만들어 주는 배려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조직생활을 하며 좋은 선배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선배가 먼저 고기를 굽고, 후배가 미안해하며 “제가 할게요” 하면 “같이 하자”라며 집게를 하나 더 쥐여주는 모습 같은 것 말입니다.
이런 장면은 사소해 보여도 오래 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큰 말보다 작은 태도에서 더 많이 상처받고, 또 더 많이 위로받기 때문입니다.
이금희 작가의 책에는 오히려 이런 좋은 사례보다 무례한 상사, 꼰대 같은 선배, 권위를 휘두르는 사람들의 사례가 더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조금만 덜 무례하고, 조금만 더 이해하려 하고, 티 내지 않게 배려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관계가 덜 힘들어질까 하고요.
건강한 공감은 경계가 있는 공감이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공감을 무조건적인 감정 소모로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공감은 중요하지만, 경계 없는 공감은 사람을 지치게 하기도 합니다. 상대의 아픔에 지나치게 휩쓸리면 결국 나도 무너지고, 관계도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공감은 함께 느끼되 휩쓸리지 않는 태도, 도와주되 내 삶의 중심까지 잃어버리지는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런 균형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에세이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정하지만 과하지 않고, 따뜻하지만 무르기만 하지는 않은 시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공감에 관하여』는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기 전에 조언부터 하게 되는 분,
회사나 조직에서 사람 때문에 지치고 관계에 피로감을 느끼는 분, 공감은 하고 싶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쉽게 소모되는 분들께 특히 잘 맞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인간관계를 조금 덜 힘들게, 조금 더 성숙하게 이어가고 싶은 분들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마무리하며
『공감에 관하여』를 읽고 난 뒤 가장 크게 남은 것은 공감이 결코 거창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 내 기준으로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조언은 요청받았을 때만 건네는 것, 때로는 침묵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티 나지 않게 배려하는 것. 어쩌면 공감은 이런 작은 태도들의 총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대단한 말을 준비하기보다, 먼저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 그게 공감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관계가 버거운 요즘, 이 책은 사람을 덜 소모시키면서도 더 좋은 관계를 맺는 방법을 조용히 알려주는 책이었습니다.
공감은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