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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혼밥, 거짓말, 무지의 지혜

ringfree 2026. 3. 25. 12:45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혼밥, 거짓말, 무지의 지혜

 

김지수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야기입니다.

 

이번 시간에도 책 속에서 오래 붙들고 생각해 볼 만한 문장들을 골라 보았습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이 삶의 마지막에서 남긴 말들이기에, 짧은 문장 하나도 가볍게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특히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혼밥의 의미, 거짓말과 평등, 그리고 무지의 지혜입니다.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모이는 주제들이기도 합니다.

혼밥은 정말 혼자인 걸까

이어령 선생님은 혼밥이 유행이라는 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먹으면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 과연 혼밥이냐고요. 혼자 밥을 먹는 행위 자체보다도, 그 순간조차 누군가와 연결된 척하는 모습에 더 주목하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만 읽으면 다소 거칠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선생님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혼자 밥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은 진짜 연결과 가짜 연결을 구분하라는 데 있지 않을까요.

 

요즘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혼자 식사하면서도 휴대폰을 보고, 사진을 찍고, 어딘가에 올리며 계속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 합니다. 겉으로는 혼자지만, 외로워 보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는 것이지요. 어쩌면 혼밥보다 더 두려운 것은, 혼자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 부분을 읽으며 뜨끔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점심을 빨리 해결하고, 그 시간을 아껴 다른 일을 하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늘 함께 먹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나누는 시간이라면, 너무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인간적인 장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먹는다는 것의 의미

인간은 오래전부터 함께 먹으며 관계를 만들고 공동체를 유지해 왔습니다.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친구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며 마음을 나누고,

누군가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행위에는 단순한 영양 섭취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어령 선생님의 말은 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편리함과 효율을 위해 점점 많은 것을 혼자 해결하고 있지만, 그렇게 하면서 인간다움의 일부를 조금씩 내려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 말입니다.

 

물론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해서 잘못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문제는 혼자 먹는 행위보다, 혼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연결된 척해야 하는 현대인의 불안에 있을 것입니다. 진짜 관계는 사라지고, 연결의 연출만 남는다면 그것은 분명 돌아봐야 할 일입니다.

거짓말이 아이들을 평등하게 만들었다는 말

이번 장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 집에 어떤 가구와 가전제품이 있는지 조사하던 시절, 없는데도 있다고 말하고, 부모가 안 계신데도 계신 척했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그리고 이어령 선생님은 놀랍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거짓말이 아이들을 평등하게 만들었다고요.

이 문장은 처음 읽으면 당황스럽습니다. 거짓말은 분명 옳지 않은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평등에 기여할 수 있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이 말이 품고 있는 현실의 무게를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예전 학교에서는 부모의 직업, 학력, 집안 형편 같은 것들을 비교적 거리낌 없이 조사하곤 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우 부적절하고 폭력적인 일입니다. 아이의 능력이나 인격과는 관계없는 가정 배경이 학교 안에서 드러나고, 그것이 차별의 근거가 되기도 했을 테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했습니다. 냉장고가 없어도 있다고 말하고, 피아노가 없어도 있다고 했습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한 것은 자랑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였겠지요.

 

그렇다면 이 거짓말은 단순히 도덕 교과서 속의 나쁜 행동으로만 규정할 수 있을까요. 이어령 선생님은 바로 그 지점을 짚고 계신 듯합니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통해 자신들을 나누는 기준을 무력화했습니다. 사회가 만든 불평등의 틈을, 서툴지만 절실한 방식으로 지워버린 것입니다.

거짓말은 나쁘지만, 그 사정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저는 원래 거짓말에 꽤 엄격한 편입니다. 선의의 거짓말도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읽으며 생각이 조금 복잡해졌습니다. 없는데 있는 척했던 것들, 모르는데 아는 척했던 것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던 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거짓말은 허영 때문만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나옵니다. 무시당할까 봐, 버려질까 봐, 부족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상처받을까 봐. 그런 두려움 속에서 나온 거짓말까지 모두 같은 무게로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거짓말 뒤에 있는 사정을 이해하는 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린아이의 거짓말은 도덕적 결함이라기보다, 부당한 환경에 대한 방어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어령 선생님의 문장은 단순히 거짓말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아이들에게 왜 그런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는지 먼저 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지혜

세 번째로 다가온 주제는 무지의 지혜였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었지요. 이어령 선생님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익숙하게 지나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참 어려운 말입니다. 사람은 대개 아는 척하기 쉽고, 특히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일수록 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령 선생님처럼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불렸던 분이 마지막 수업에서 강조한 것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는 점은 참 깊은 울림을 줍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지의 자각은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과 용기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검색만 하면 무엇이든 금방 알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정보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더 쉽게 착각하게 됩니다. 많이 접했다는 이유만으로 안다고 믿고, 조금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이해했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럴수록 “나는 아직 잘 모른다”라고 말할 수 있는 태도가 더 귀해집니다. 진짜 배움은 아는 척에서 멈추고,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AI 시대일수록 더 중요해지는 무지의 지혜

이 부분을 읽으며 오늘의 시대도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AI도 많은 답을 내놓고, 사람들 역시 확신에 찬 말들을 너무 쉽게 쏟아냅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답을 말하느냐보다, 어디까지가 알고 어디부터가 모르는지를 구분하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배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미 다 안다고 믿는 사람은 그 순간 성장을 멈추게 되겠지요. 그런 점에서 무지의 지혜는 단순한 철학적 문장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삶의 태도처럼 느껴졌습니다.

세 가지 이야기가 결국 향하는 곳

혼밥, 거짓말, 무지. 언뜻 보면 서로 전혀 다른 주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글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이 세 가지가 결국 모두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었습니다.

혼밥의 이야기는 진짜 관계가 무엇인가를 묻고, 거짓말의 이야기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생각하게 하며, 무지의 지혜는 겸손과 진실한 배움의 태도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 주제는 전부 결국 이렇게 묻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함께 먹는 시간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누군가를 차별하는 구조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아는 척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어령 선생님의 문장은 바로 이런 질문들을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던져줍니다.

마무리하며

이번 연재를 정리하며 저는 거짓말에 대해 특히 오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없는데 있는 척했던 것들, 모르는데 아는 척했던 것들, 슬픈데 괜찮은 척했던 것들. 돌아보면 우리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작은 거짓말을 해왔을 것입니다.

 

거짓말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거짓말 뒤에 어떤 두려움과 상처가 있었는지를 보게 되면, 함부로 단죄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문장은 그런 복잡한 인간의 마음까지 함께 보게 해줍니다.

 

그리고 결국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이 한 가지입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지혜. 어쩌면 그것은 배움의 출발점이자, 인간이 끝까지 붙들어야 할 가장 정직한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단순히 좋은 문장을 모아둔 책이 아닙니다. 삶의 마지막에서야 더 또렷해지는 진실을 들려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읽을수록 지식을 얻는다기보다, 오히려 내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이번 세 번째 이야기도 제게는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함께 먹는다는 것의 의미, 약한 이들이 했던 거짓말의 사정, 그리고 모름을 인정하는 용기까지. 오늘도 이 문장들을 마음에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