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첫째 날 헬렌이 가장 보고 싶었던 것들
헬렌 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첫째 날 헬렌이 가장 보고 싶었던 것들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의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헬렌이 “만약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보고 싶은지,
그중에서도 첫째 날의 소망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번 글을 끝으로 연재를 마무리하려 했지만, 헬렌이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보고 싶어 한 장면들이 너무도 깊고 아름다워서 한 번에 지나치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나누어 천천히 기록해 보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헬렌 켈러가 첫째 날 보고 싶어 했던 것들입니다.
헬렌 켈러가 첫째 날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것
헬렌은 사흘 동안만 세상을 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 시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쓰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첫째 날에는 자신의 삶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 다정함과 친절함, 우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가치 있게 해준 이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고 싶다는 것이지요.
이 대목을 읽으며 마음이 참 오래 머물렀습니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살아가지만, 정작 그 얼굴을 얼마나 깊이 바라보고 있을까요. 너무 익숙해서, 늘 곁에 있어서 오히려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헬렌은 단순히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표정의 미묘한 변화, 근육의 떨림, 손의 흔들림 같은 작은 움직임을 통해 사람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 헬렌에게는 평생 닿지 못했던 세계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가까운 사람을 제대로 보고 있을까
헬렌의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는 과연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친한 친구의 얼굴을 지금 당장 자세히 묘사해 보라고 하면, 의외로 막막해지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늘 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스쳐 지나가듯 바라본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도 상대의 눈빛과 표정을 온전히 살피기보다, 말의 내용만 따라가거나 잠시 시선을 피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더 자주 보는 가족의 얼굴보다 드라마 속 배우나 화면 속 인물의 얼굴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기도 하지요.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동시에 소중한 것을 무디게 만들기도 합니다.
헬렌은 바로 그 점을 일깨워 줍니다. 눈으로 본다고 해서 모두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니라고요. 눈앞에 있다고 해서 마음에 남는 것도 아니라고요.
첫째 날, 친구들의 얼굴과 아기의 천진함을 보고 싶었던 헬렌
헬렌은 첫째 날 아주 바쁠 것이라고 말합니다.
소중한 친구들을 모두 불러 그들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그들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의 외적 증거를 마음속에 새겨두고 싶다고 합니다.
또 아기의 얼굴도 오래 응시하고 싶어 합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 아직 삶의 갈등을 알지 못하는 천진한 표정,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맑은 생명의 빛을 보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이 부분은 참 뭉클했습니다. 헬렌이 보고 싶었던 것은 거창하고 특별한 풍경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 안에 담긴 마음과 생명의 기운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자주 놓치는 장면들이지만, 헬렌에게는 하루를 통째로 써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귀한 것들이었습니다.
반려견의 눈빛, 집 안의 작은 물건들까지
헬렌이 첫째 날 보고 싶은 목록에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위로해 준 반려견들의 충성스럽고 믿음직한 눈빛도 꼭 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따스함과 부드러움, 변함없는 우정을 전해준 존재들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집 안의 작은 물건들까지 보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발밑에 깔린 양탄자의 따뜻한 색깔, 벽에 걸린 그림, 다른 집과는 다른 자기 집만의 사소한 분위기까지도 눈에 담고 싶어 합니다.
정말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우리는 특별한 여행지, 화려한 장면, 눈부신 풍경을 봐야만 ‘잘 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헬렌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늘 곁에 있었던 평범한 것들이라고요. 매일 지나치던 사물, 익숙한 공간, 오래 함께한 존재들이야말로 진짜 삶의 풍경이라고요.
점자책과 인쇄된 책, 헬렌에게 책은 빛나는 등대였다
헬렌은 집 안의 물건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읽어온 점자책도 보겠지만, 눈으로 읽는 사람들이 보는 인쇄된 책에 더 큰 관심이 갈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책을 대하는 헬렌의 태도와 삶의 깊이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녀에게 책은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인간의 삶과 정신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등대 같은 존재였지요. 보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도 책은 그녀를 넓은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그렇기에 단 하루라도 볼 수 있다면, 자신이 사랑해 온 책들이 눈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마음이 유난히 크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펼치는 한 권의 책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비추는 빛일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보는 사람들의 눈은 왜 자꾸 게을러질까
헬렌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눈이 일상에 너무 쉽게 익숙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놀랄 만한 것이나 화려한 것에만 시선이 쏠리고, 정작 삶을 이루는 중요한 장면들은 무심히 지나쳐 버린다고요.
정말 맞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도 우리는 풍경 그 자체보다 사진을 찍는 일에 더 몰두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상대의 눈빛보다는 휴대폰 화면을 더 오래 바라보기도 합니다. 보고 있다는 사실이, 제대로 본다는 뜻은 아닌 것입니다.
헬렌의 문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요. 그리고 그것을 정말 보고 있나요.
이 글을 읽고 난 뒤 떠오른 나의 질문
저 역시 이 부분을 읽으며 제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얼굴, 가족의 표정, 멀리 계신 어머니의 얼굴까지 하나씩 생각해 봤습니다. 분명 자주 떠올리는 얼굴들인데, 막상 세세하게 묘사하려 하니 쉽지 않더군요.
그 순간 조금 아쉬워졌습니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헬렌은 평생 바라지 못했던 것을 그토록 간절히 꿈꾸는데, 우리는 그 귀한 능력을 너무 쉽게 흘려보내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력이 아니라 보는 태도인지도 모르겠다고요.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내일 볼 수 없게 된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볼까
헬렌의 글을 읽고 나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만약 내일부터 볼 수 없게 된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보고 싶은가.
저는 가장 먼저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매일 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너무 익숙해서 자세히 보지 않았던 얼굴들 말입니다. 눈빛, 주름, 미소, 말할 때 움직이는 입술, 가만히 있을 때의 표정까지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깊이 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멀리 계신 어머니의 얼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처럼 무심히 보지 않고 마음에 남도록 바라보고 싶습니다.
헬렌이 첫째 날 보고 싶어 했던 것들은 결코 특별한 것들이 아닙니다. 친구의 얼굴, 아기의 표정, 반려견의 눈빛, 집 안의 작은 사물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울림이 있습니다. 진짜 소중한 것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고, 늘 곁에 있기에 자주 잊고 산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작은 습관 하나, 스치지 않고 바라보기
이 책을 읽으며 저도 하나의 작은 습관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무엇을 보든 스치듯 보지 않고, 잠시 멈추어 자세히 바라보는 습관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모든 것을 다 그렇게 볼 수는 없겠지만, 하루에 단 하나라도 이전과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의 결이 조금은 달라질 것 같습니다.
가족의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보는 일, 창밖 풍경의 색을 천천히 느껴보는 일, 익숙한 사물의 모양과 빛을 새롭게 관찰해 보는 일. 그런 아주 작은 실천들이 어쩌면 삶을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헬렌은 볼 수 없었기에 보는 것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아갑니다. 이 역설이야말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무리하며
첫째 날 밤, 헬렌은 아마 그날의 기억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도저히 잠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문장을 읽으며 저도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충만한 하루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거창한 일이 없어도, 소중한 사람과 사물을 새롭게 바라본 하루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주 조용하지만 깊은 질문을 남깁니다. 나는 지금 이 세계를 얼마나 성실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제대로 보고 있는가.
오늘 하루만이라도, 스쳐 지나가던 것을 잠시 멈추어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익숙한 얼굴 하나, 늘 곁에 있던 사물 하나, 창밖의 빛 하나라도 천천히 눈에 담아보면 어떨까요. 그 순간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세계가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헬렌은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보는 것의 소중함을 알았고,
우리는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잊고 산다.